할수있는 방법은 다 시도해봤고, 결국 포맷했어요.
한동안 우울할것같아요.
어쩌면 제법 오래 갈지도.
도둑맞는걸 걱정하지 않고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나눌게요.
사진보다 더 소중한 것을 꼭꼭 기억할게요.
심리학자인 Elisabeth Kübler-Ross의 이론으로, 심리학자의 이름은 모르더라도 받아들이기 위한 다섯 단계로 많이들 들어보셨을거예요.
까만 화면을 보는 순간 직감했어요. 하지만 현실을 부정(Denial)해요.
- 아니야, 괜찮을거야. 중요한 자료는 시스템과 다른 파티션으로 구분해두었는걸.
- 내일 서비스센터에 가서 점검을 받으면 꼭 살릴수 있을거야.
- 센터에서는 안된다고 했지만 인터넷 상에는 복구했다는 사람들이 많아. 어쩌면 이 프로그램들로 해결할수 있을지도 몰라.
- 괜찮을거야, 괜찮을거야, 다 사라졌을리 없어.
화(Anger)가 나요.
- 왜 하필 내 사진이야?
- 나는 이상한 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된거지?
- 내가 하려던건 LG S/W 업그레이드일 뿐인데.
- SSD를 구매한지 2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어.
- 하나님 이거 왜 이래요? 왜 안되는거예요?
하다하다 말도 안되는 협상(Bargaining)까지 시도해봅니다.
- 하나님 이제 평일에도 예배 빠지고 놀러가지 않을게요.
- ㅇㅇㅇ와 ㅁㅁㅁ도 다 나누어줘도 괜찮아요.
- 선교 더 가라고 하시면 또 갈게요.
- 다 없어졌어도 괜찮으니 ###와 $$$에 갔던 사진만이라도 살려주세요...
하지만 안되는걸 알아요. 한없이 우울(Depression)해져요. 이 단계가 앞의 세 단계를 모두 합친 것보다 길었던것같아요.
프로그램을 돌리고 3시간 정도 걸린다는데 멍하니 바라보고있어요. 식욕도 없고 움직이기도 싫어요. 있는 힘을 모두 짜내어 겨우 톡을 보냈어요.
- 오늘 연습 못갈것같아요...
- ...하면 고양이는 어떻게 하지? 문 앞에 일단 내놓을까. 밥이랑 물도 같이 내놓아야겠다. 운동 끊어둔거 아깝네.
사건이 발생한지 36시간이 경과하고, 교회에 갈 준비를 해야해요.
여전히 멍하고 가만히 있으면 울고싶어져요.
하지만 이제 안되는걸 정말 알아요. 받아들여(Acceptance)야죠.
메신저라던가 이메일에 남아있는 자료를 최대한 긁어모으려면 한시라도 빨리 저장공간을 마련해야하니 눈물을 머금고 포맷을 해요.
Y의 말마따나 또 여행을 갈거예요. 어쩌면 조금 오래 돌아다닐지도 몰라요.
사진을 찍을수 있는게 내 능력이 아니라 선물받은 것이니 나도 마음을 보듬어주는 사진을 찍고, 아낌없이 나누겠다고 다짐도 해봐요.
여전히 대화하는것도 귀찮고 속도 뒤집어졌지만 오늘 해야할 일들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앉아있어요.
포맷이 완료되었고, 프로그램 설치에 앞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어요.
단지 사진을 찍었던게 소실되어 마음이 아픈게 아니에요.
지금은 곁에 없는 사람이나 만날수 없는 사람들과 함께 했던 추억이 거기에 있었어요.
끝내 하지 못한 말을 품고 돌아오던 길에, 또 어느 날은 정말 지옥의 밑바닥이 이렇지 않을까 싶던 때에 선물처럼 보았던 예쁜 하늘들.
이제는 생각나지 않는 누군가의 웃는 얼굴.
나중에, 모든 과정이 지난 뒤 하늘나라에 가면 오래전 잃어버린 토끼인형이랑 같이 이 사진들도 달라고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해봐요.
그때는 그런게 그립지 않을지도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