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24개월을 지나 4세 전후 아기를 키우다 보면 이런 장면을 자주 마주합니다.
주양육자 A가 다른 일을 해야 해서 부양육자 B가 도와주려 하지만, 아이는 단호히 거부합니다. 더 곤란한 건 B가 "그래? 그럼 A 불러." 하며 물러나버리는 상황입니다. 그러면 부모 모두 지치고, 아이는 점점 "A만" 찾게 되지요.
저 역시 같은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남편과 나는 퇴근 시간이 비슷해 아이를 돌보는 시간이 크게 차이나지 않음에도, 아이는 요즘 들어 자꾸 나만 찾습니다. 한동안은 어린이집에도 가지 않겠다며 집에서 A와만 놀겠다고 고집을 부리거나, 등원 날 아침마다 통곡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요즘은 조금 나아져서 등원은 잘 하고 있지만, 여전히 "A만" 찾는 상황은 반복되고 있습니다.
제목에 쓴 것처럼 실제 가정에서 A는 대부분 엄마, B는 대부분 아빠이지만, 경우에 따라 그 역할은 바뀔 수도 있고 조부모나 다른 보호자가 맡는 경우도 있습니다.
🐑 발달적 배경
24~48개월 아동은 발달심리학에서 '자율성 대 수치심·의심' 단계에 있습니다(Erikson, 1963). 스스로 해보고 싶은 욕구가 강해지고, 동시에 특정 보호자에게 집착합니다.
- 정서 발달: 분리불안은 줄지만 특정 보호자에게 강한 선호를 보입니다.
- 인지 발달: A와 B를 명확히 구분하고 자기중심적 사고가 여전히 강합니다(Piaget, 1952).
- 사회성 발달: 또래와 교류를 늘려가지만 가족 내 주요 애착 대상에게 의존하는 성향이 두드러집니다.
미국소아과학회(AAP)는 모든 정기 건강검진에서 발달 감시(surveillance)를 시행하고, 9·18·30개월에는 표준화된 도구를 활용한 발달 스크리닝(screening)을 권장합니다(Committee on Children With Disabilities, 2001; Lipkin & Macias, 2020). 이는 특정 보호자에 대한 선호가 나타나는 시기에 발달 전반을 점검해야 한다는 의미와도 연결됩니다.
다시 말해 "A만 해줘!"라는 말은 B를 거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A와의 애착을 확인하고 싶어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 A와 B의 규칙 만들기 사례
이 시기 아이들은 단순히 A만 찾는 것을 넘어서, A와 B와 관련된 '규칙'을 스스로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 아침에 갑자기 "오늘 어린이집 가기 싫어!"라며 울면서, "A가 정말 일찍 와야 해"라고 조건을 내겁니다.
- 하원 시간에는 "A와 B가 같이 데리러 와야 한다"라는 규칙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 또래와 교류할 때는 "A나 B가 친구에게 과자를 주는 건 안 돼. 내가 직접 줘야 해"라며 자기만의 원칙을 고집합니다.
이는 아이가 아직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자기 방식대로 세계가 돌아가야 한다'는 발달적 특성에서 비롯됩니다.
🐑 자기중심성 완화 방법
- 일관된 규칙 유지: A와 B가 같은 태도를 보이면 아이는 세계가 자신의 뜻대로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배웁니다.
- 제한된 선택권 제공: "빨간 컵으로 마실래, 파란 컵으로 마실래?"처럼 선택지를 주면 자기 주도성을 존중받으면서도 규칙 속에 머물게 됩니다.
- 감정 언어화: "A랑 하고싶어서 속상했구나. 그런데 오늘은 B가 해줄 거야."라고 말해 감정을 인정하면서도 상황은 바뀌지 않음을 알려줍니다.
- 작은 좌절 경험 허용: 응석을 즉각 다 받아주지 않고, 짧게 좌절을 겪게 하는 것이 회복 탄력성을 길러줍니다.
🐑 B가 물러설 때 생기는 문제
문제는 아이의 반응보다 부모의 반응 패턴에 있습니다.
아이가 울면 바로 A를 불러주는 방식은 '울면 원하는 대로 된다'는 학습을 강화합니다.
동시에 B와의 돌봄 경험이 줄어들어 더더욱 A만 찾게 됩니다.
이는 A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B의 소외감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집니다.
단, 2~3세 아동이 작은 일에도 울거나 물건을 던지는 것은 발달적 특징이기도 하므로, 시기적 특성과 잘못된 대응을 구분해 이해해야 합니다.
🐑 조부모의 개입과 외부 활동
조부모가 A와 B의 원칙을 무시하고 몰래 사탕을 주거나 "여기서는 해도 돼"라며 응석을 받아주는 경우, 아이는 더욱 혼란스러워집니다.
집에서는 안 되지만 조부모 집에서는 된다는 간헐적 허용은 오히려 규칙 위반 행동을 강화합니다.
제한이 무너지는 일이 반복되면, 귀가 후에도 그 영향이 이어져 규칙 준수에 저항할 수 있습니다.
국내 연구에서도 부모의 양육 태도(감독·과잉기대 등)가 아동의 언어·소근육 운동 발달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되었습니다(백순기·김도진, 2019). 즉, A와 B뿐만 아니라 조부모도 일관된 규칙을 공유하고 지켜야 발달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외부 활동은 양날의 검입니다. 주말마다 여행을 가거나, 교회 등에서 여러 사람과 장시간 보내는 것은 사회성 발달에 긍정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잦거나 일관된 생활 리듬을 깨뜨리면 오히려 불안정을 키울 수 있습니다. 규칙적인 일상과 적절한 외부 경험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 A와 B, 각자의 역할
- 주양육자 A의 역할: 안정적 애착 형성과 정서적 안정, 기본 생활습관(식사·수면·배변훈련) 주도
- 부양육자 B의 역할: 아동의 사회적 탐색 행동(social exploration)을 촉진(Lamb, 2010).
연구에 따르면 B와 같은 부양육자의 꾸준한 양육 참여는 문제행동 감소, 언어 발달 촉진, 정서조절 능력 강화와 연관됩니다(Lamb, 2010; AAP, 2001). 일본소아과학회 역시 아버지·부양육자의 적극적 참여가 A 의존성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고합니다.
🐑 구체적 대응 전략
- A와 B가 같은 입장 세우기: A가 먼저 "오늘은 B가 도와줄 거야"라고 말하고, B가 이어서 행동합니다.
- B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맡기: 아이가 울어도 씻기나 옷 입히기를 끝까지 해냅니다. 반복될수록 아이는 B의 돌봄을 받아들입니다.
- 작은 성공 경험 쌓기: 책 읽기, 놀이, 간식 주기처럼 거부감이 덜한 활동부터 시작해 점차 생활 돌봄으로 확장합니다.
- A의 개입 최소화: 아이가 울더라도 곧바로 개입하지 않고 B에게 맡깁니다. 아이는 결국 B와 함께해야 한다는 경험을 통해 새로운 돌봄 관계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 상황별 대화 예시
- 목욕: "B가 물 따뜻하게 맞춰줄게. 기분 좋아."
- 식사: "B가 밥 퍼줄게. 네가 숟가락 드는 건 똑같아."
- 옷입기: "B가 지퍼 올려줄까? 단추는 네가 해보자."
- 장난감 정리: "B랑 시합해보자. 누가 빨리 정리하나."
- 책 읽기: "B가 목소리 다르게 읽어줄게."
- 안아주기: "지금은 B 품이야. B 품도 따뜻해."
🐑 결론
"엄마만 해줘!"라는 말은 사실 "A만 해줘!"라는 말로, 24~48개월 아동 발달 과정에서 흔히 나타나는 정상적 현상입니다. 하지만 B가 계속 물러서면 아이의 A 의존성은 과도하게 강화되고, 가정 내 균형이 무너집니다. A와 B가 같은 입장을 유지하고, B가 끝까지 역할을 이어가는 것이 해법입니다.
조부모의 개입은 반드시 A와 B의 원칙과 일관되게 유지돼야 하며, 외부 활동과 외식은 아이의 사회성과 식습관에 긍정·부정 양면의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균형과 조율이 필요합니다. 발달심리학 연구와 학회 권고 모두 한목소리로 강조합니다. B의 꾸준한 참여가 아이의 건강한 성장과 가족의 균형에 핵심적입니다.
참고
- Erikson, E. H. (1963). Childhood and Society. Norton.
- Piaget, J. (1952). The Origins of Intelligence in Children. International Universities Press.
- Lamb, M. E. (2010). The Role of the Father in Child Development. Wiley.
- Committee on Children With Disabilities. (2001). Developmental Surveillance and Screening of Infants and Young Children. Pediatrics, 108(1), 192–196.
- Lipkin, P. H., & Macias, M. M. (2020). Promoting Optimal Development: Identifying Infants and Young Children With Developmental Disorders Through Developmental Surveillance and Screening. Pediatrics, 145(1), e20193449.
- 백순기, 김도진. (2019). 부모의 양육태도와 아동발달의 관계. 열린유아교육연구, 24(6), 29–49.
- World Health Organization. (2020). Guiding principles for complementary feeding of the breastfed child. W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