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8: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7장 마지막과 연결. 이 당시의 행위를 사울이 동의했고 함께 행동했다.
그들이 믿고있던 하나님과 스데반이 믿던 하나님이 달랐으므로 그를 죽였다. 이는 부당하고 불법적인 행위이나 사울이 이에 동의한 것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유대의 지도자들과 동일한 눈으로 스데반을 바라보았기 때문으로 지속적인 것이다.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스데반이 죽은 그 날 이후 믿음의 사람들에게 큰 박해가 시작되었다.
우리 나라에도 일제강점기에 이런 박해가 있었고, 세계 곳곳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
연간 3000여명이 이렇게 죽는다.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이 박해를 하나님은 복음을 확산하는 도구로 삼으셨다.
유대, 사마리아, 소아시아...
흩어지다: 누군가에 의해 흩어졌다. 수동태.
민들레 씨앗이 흩어지듯.
(창 11:1)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창 11: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창 11: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창 11: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물로 심판하실 때도 홍수 때문에 두려워했고, 흩어지는 것을 면하기 위해 바벨탑을 건축했다.
때문에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흩으셨다.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스스로를 위해 단합하는 것을 원치 않고, 흩어져서 하나님의 이름을 내기 원하신다.
많은 이들이 흩어졌으나 여전히 예루살렘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있다.
이는 사도들. 매우 위험한 곳이지만 사명이 있으므로 잔류시키셨으리라 추측한다.
죽음: 아나이레시스. 신약에 23회 등장하는데 이중 21회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등장한다.
스데반의 죽음이 예수님의 죽음처럼 부당한 죽음이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행 8: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당시 공개적인 처형을 당한 사람을 위해 눈물흘리는 것은 그에 동조한다는 의미로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경건한 자들은 그 시산을 장사하며 크게 울었다. 그 죽음이 부당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울은 이 시위를 무시하고 계속하여 핍박자의 모습을 고수한다.
(행 8: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사울은 교회를 완전히 뿌리뽑으려 했다.
잔멸: 70인역에는 사자나 곰이 동물을 잡아 찢어 죽이고 뜯어 먹는 행위에 사용하는 단어로 표현한다.
그만큼 사울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물어 뜯을듯 박해했다.
(대하 16:10) 아사가 노하여 선견자를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의 말에 크게 노하였음이며
그 때에 아사가 또 백성 중에서 몇 사람을 학대하였더라
이 학대가 위의 잔멸과 같은 단어이다. 이는
단순히 괴롭힌다는 의미의 학대가 아니라 산산이 부수고 으깨었다는 것이다.
자신을 거부하는 하나님의 사람을 가둔 것처럼 사울이 사도들을 잔멸했다.
이 때 복음을 전한 대표격인 사람이 빌립 - 사마리아.
하나님은 불편한 곳으로 보내신다. 그럼에도 복음을 전해야하는 곳으로 우리를 보내신다.
이후 에티오피아 내시를 만나고 가이사랴에 이르며 8장 종료.
복음이 증거되어야한다.
사람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와 방법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