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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간 이야기/성경 이야기

예수님의 10 가지 명령(2) 세례와 공동체

회개의 세례를 받으라.

지금까지 교회가 강조한 세례는 개인적 측면이 강했다.
구주를 내 주로 고백하고 그의 신부가 되어 새 삶을 얻는다는 교육을 받고 그렇게 이해해왔다.

오늘의 이야기에서는 세례의 근본적인 관점이 다르다.
기존의 것이 틀렸다는 의미가 아니라 출발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가 놓쳐왔던 부분에 대해 생각해보자.

Q. 구약에는 세례가 있었을까.
이 예식 자체가 구약에는 없는듯 보인다.
우리가 아는 세례는 에세네파인 요한과 연관된 것.

세례시 에세네파의 서약
1> 하나님을 사랑하고
2> 이웃에 대한 사랑과 정의를 실현하고.
이를 실천해야 에세네파의 품격에 맞는 일원이 된다는 것.

세례는 공동체를 염두에 둔 것이다.
공동체의 목적에 따라 살겠다는 결단.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겠다.

(마 28: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가는것 자체가 목적이 되면 바른 선교가 아니다.
문법을 보면 가는게 본동사가 아니라 제자를 삼는 것이 본동사다.
제자삼기위해 가야하고 제자삼기위해 세례를 주고 가르친다.
복음의 볼모지에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가르치며 세례를 준다.

(고전10:1-2)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구름과 바다, 물.
애굽을 떠나 홍해를 건넌다. 애굽의 시점에서 볼 때 한 민족이 깊은 바다속으로 들어가 죽는다.
애굽은 세속과 세상의 상징. 거기에 대해 절연하고 죽는 것.
반대로 가야할 곳인 가나안 쪽에서 볼 때는 바다 속에서 한 민족이 살아나온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는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홍해: 옛 것에는 죽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는 새로운 시작.
세례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시작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신실한 목적지인 새 삶까지 한번에 표현하는 것이 세례이다.

(고전10:3-4)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리스도로 먹고 마신다. 다같이(공동체)
공동체로 나가지 않으면 세례받은 의미가 없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원문에는 이름 속으로. 
이는 공간의 개념이 아니라 이제는 그분의 소속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삼위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그분의 소유권 하에, 그분의 소속이 된다.

(갈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유니폼.

(갈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그리스도 안에서는 일체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