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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간 이야기/성경 이야기

사도행전 15:36-41

어린양 Lami 2018.08.31 06:30

가을이 되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있는가.
저마다 가을을 맞이하는 인생의 관점이나 준비가 다르리라.
이는 개인이나 교회나 마찬가지.

안디옥 교회가 선교에 대한 새로운 준비를 하고 있는 연장선에서 오늘의 이야기를 이해하자.
1차 선교여행이 끝났다. 1차는 전파하고 뿌리는데 집중되어있다. 바울을 중심으로 하여 여러 험로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이제 안디옥 교회는 다음 선교를 준비하는 중에 있다. 그 가운데에도 선교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고 다음 준비를 하고있다. 다음 준비를 하는 과정에 난관이 생겼다. 
바울과 바나바의 갈등.

2차 선교여행에 누구를 데려갈까 고민한다. 마가는 1차때 중도포기한 자였다.

(행 13: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요한은 중도포기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이 요한을 다른 말로는 마가라고도 부른다.
이 마가가 '마가의 다락방'에 나오는 집 아들. 그 집은 최소 120명이 들어갈수 있던 다락방이니 그의 집안의 부를 미루어 짐작할수 있다.
성경에는 이 상세한 이유가 나와있지 않으므로 정확한 이유는 알수 없다.
학자들은 4가지 의견이 있다.
1 향수병
2 일행과의 갈등
3 지명을 보면 곧 큰 산맥같은 언덕을 넘어야하므로 그것이 힘들어서
4 바울과의 갈등

1차와 2차의 차이는 1차가 다니고 전하고 선포하는데 집중했다면 2차는 세가지 목적이 있다.
1 지난 선교여행 확인. 잘 성장하고 있는지.
2 점검. 다른 문제는 벌어지지 않았는지.
3 양육. 어떻게 build-up 할것인가.
이를 위하여 중요한 것이 팀을 세우는 것이었다.

(행 15:36)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행 15: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행 15: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행 15: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이를 보며 혹자는 바울이 일중심이며 바나바는 인간 중심이라 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후에 바울도 영혼을 소중히 여기고 사람을 귀히 여기는 흔적을 명백히 발견할수 있다.
따라서 개별적인 성향으로 볼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전체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행 15: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이 뒤에 바나바의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뒤에 바울은 실라와 함께 본격적인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바울 쪽에 손을 들어준 것인가 생각할수 있다. 과연 그러한가.
눈에 드러난 것만이 하나님이 인정하신 것이고 감추이며 보이지 않는 것은 그렇지 않은가.
우리의 삶의 문제가 그리 단선으로 평가될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시대마다, 사람마다 맡은 역할이 다르다.
어느 역할이 옳고 틀리고는 우리가 함부로 이해하고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어떤 사람은 계속 드러나는 일만 맡을수도 있다.
그것이 그만 일꾼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를 드러나게 하기 위하여 밑바닥의 역할을 맡은 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를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사관으로 봐야한다.

(행 16:37)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 옥에 갇히고 매를 맞았을 때의 일이다.
바울도 실라도 로마 사람이었다. 
'너희가 어떻게 로마인인 우리를 이리 가혹하게 처벌할수 있느냐. 간부들을 데려와 우리를 모셔가라 하라'
이미 복음은 이 무렵에 하나님의 강력한 핸들링과 섭리를 통하여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지경을 벗어나 불붙듯 이방과 로마를 향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복음이 로마의 심장부로 향하는 계획을 가지셨기에 바울에게 로마 사람을 붙여주신 것이다.

(행 16: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디모데는 혼혈.

(행 16:2)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두루 칭찬받는 자이나

(행 16:3)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그럼에도 바울은 유대인- 동족을 향한 복음의 열심을 내려놓지 못했다.
가는 곳마나 유대인에게 복음 전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행 16:4)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땅은 이방 땅을 밟으나 계속 유대인을 만나고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한다.

(행 15: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행 16:5)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이 일이 잘 진행되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사역이 하나님의 뜻이라 오해하고있었다.
그래서 지명을 보면 계속 북아시아로 돌아다니며 동족들에게 가서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이방의 지경을 넘어 로마의 심장부를 향하도록 하고 계셨고, 두 번이나 바울의 행로를 막았다. 그가 설득당한 것은 결정적으로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본 뒤였다. 그 때에야 행로를 꺾어 빌립보에 도착하였다. 마게도냐의 첫 성 빌립보.
여기서 매를 맞은 뒤 로마 시민권자, 본인만이 아니라 실라도 로마인임을 밝힌다. 
감옥에서의 기도와 찬송도 하나님의 섭리의 경이를 보았던 것을 드러낸다.

(딤후 4: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죽기 전에 마가를 불러들인다. 
당시에는 내칠수밖에 없었으나 훗날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마가는 바울의 부름을 받는다.
마가가 이렇게 유익한 일꾼으로 자라고 성숙하기까지 그를 데리고 떠난 바나바가 그를 양육했다.

갈등이 있다는 것은 적어도 그 공동체가 움직이고 살아있다는 의미다.
죽어있는 자들은 침묵한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모든 갈등과 분쟁을 넘어 하나님은 그의 일을 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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